2015.01.13 문화일보_김정은의 獨白

김정은의 獨白
남성욱 / 고려대 교수·북한학,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지난 3년은 정신없이 달려왔다. 아버지가 급서하여 제왕학을 배울 틈도 없이 권좌에 올랐다. 외부에서는 젊은 지도자가 얼마나 가겠느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권좌에 올라보니 겉으로만 충성하는 체하는 양봉음위(陽奉陰違)의 고위층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중국만 바라보는 고모부 장성택을 제거하지 않으면 권력의 영(令)이 서지 않아 칼을 휘둘렀지만 솔직히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다. 군과 당의 노회한 권력층을 회전문 인사로 흔들고 숙청으로 위상을 보이니 나에 대한 태도들이 상당히 달라진 것 같다. 감히 총참모장이라는 자가 영도자가 참석하는 1호 행사에 권총을 차고 의전을 하는 불경죄가 재연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허점을 보이면 벌떼처럼 달려들 테니 주기적으로 사상단속을 해야 한다.
을미년 집권 4년 차다. 양띠해를 잘 넘기면 5년 차로 권력을 연착륙시킬 수 있는 골든 타임이다. 나만의 브랜드를 가져야 할 때가 됐다. 내치(內治)는 애민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켜야겠다. 고모부 처형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자애로운 모습을 인민들에게 선보이도록 이미 선전선동부에 지시했다. 새해 첫날 평양시 육아원을 방문해 눈물까지 보였는데 로동신문 1면 사진이 잘 나온 것 같다. 민심잡기 전략은 할아버지 따라 하기가 효과적이다. 김일성 주석이 환생한 듯한 기시감(旣視感)을 주는 것은 3대 세습을 정당화하는 데 매우 필요하다. 지난해 무리하게 움직여 발목 부상으로 고생했다. 당분간은 힘들더라도 군과 각 기관들에 대한 현지지도를 활발하게 해야겠다. 최고 존엄 권력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
올해는 아무래도 국제적 고립을 탈피해야 한다. 유엔의 인권결의안이 통과되어 공화국에 대한 압박이 가중될 것이다. 요덕수용소를 분산 이전하는 등 인권 개선에 대한 제스처를 몇 가지 준비해야겠다. 연초부터 미국에 관계개선과 핵실험 카드로 북조선에 대한 압력을 약화시켜야겠다. 5월 중에 러시아를 방문하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모스크바에서 개최되는 70주년 전승절(5·9) 다자행사는 불참하고 별도로 시기를 조절하여 개별 회담을 할 계획이다. 그래야 국제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1석3조의 전략이다. 전통적인 중·러 등거리 전략으로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고 북·남·러 합작으로 나선 경제특구에 대한 실리를 획득한다.
3년이 지나도록 평양 지도자를 베이징(北京)에 초청하지 않는 중국에 북·러 회담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내 생일(1·8)에 중국이 북·중 우호협력의 16자 방침을 보내왔으니 관계개선이 예상된다. 만추의 계절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숙박한 조어대(釣魚臺)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정상회담도 가능할 것이다. 명실상부한 지도자로서 국제적인 위상이 올라갈 것이다. 지난해 외무성과 정찰총국의 관료들이 과잉 대응하여 미국 소니픽처스의 영화 ‘인터뷰’만 대박 나게 해준 것 같다.
아무래도 올해는 서울과의 관계 정립이 중요할 것 같다. 남측도 집권 3년 차를 맞이하여 회담에 적극적이니 기회를 포착해야겠다. 지난해는 설 명절 이산가족 상봉을 하고 남측에서 받은 것이 없는데, 올해는 반대급부를 확실히 받아야겠다. 천안함·연평도 공격에 대해 모호한 유감 표명으로 5·24 조치 해제를 받아내야 한다. 그래야 현금수익이 보장되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 19개나 지정한 경제특구에는 역시 남측기업을 유치할 수밖에 없다.
남측에서 무슨 삐라를 주기적으로 휴전선 넘어 우리 측으로 날려 보내는데 무조건 차단해야겠다. 신년사에서 내가 최고위급회담을 언급했고 남측 대통령도 신년기자회견에서 진정성과 비핵화 진전 등 조건부 정상회담을 언급했으니 세부전략을 수립해야겠다. 남측도 광복 70주년으로 민족주의가 고조될 테니 어느 수준의 회담이든지 실익이 있을 것 같다. 밀물썰물 전략으로 남측을 잘 관리해야겠다. 8·15 광복절 즈음에는 고위급인사가 깜짝 서울 방문하도록 하여 북·남관계 개선 분위기를 띄워야겠다.
스위스에서 스키 타고 승마하던 조기유학 시절이 그립다. 지난해 40일 두문불출(杜門不出)했더니 남측에서 유언비어가 만연했다. 올해는 건강을 생각해서 와인과 에멘탈 치즈를 줄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