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경제특구의 치명적 결함
남성욱 / 고려대 교수·북한학,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모두 80억 달러를 투자한다. 원산비행장은 하루 4000명이 이용하도록 확장한다. 오성급 호텔, 스키장, 골프장 및 승마장 등 편의시설을 구비한다. 최근 북한의 국가설계지도국이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원산-금강산관광지구 개발총계획’의 내용이다. 김정은의 실질적 고향인 원산 인근을 사계절 관광지구로 개발해 연 1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장밋빛 청사진이다. 상반기 중에 해외에서 투자 유치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과연 야심 찬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김정은의 경제정책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경제특구 건설이다. 젊은 지도자는 집권 후 6개월도 안 된 2012년 4월 “인민들이 더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새 권력자가 가난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시정을 다짐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북한의 다급함이 드러났다. 이듬해 당 중앙위는 도(道)마다 경제개발구 설치를 결정했다. 이후 평균 두 달에 한 곳씩 특구 지정을 남발했다. 현재까지 강령 국제녹색시범구 등 중앙급 경제개발구 9곳, 흥남 공업개발구 등 지방급 16곳 등 모두 25곳을 지정했다. 가위 북한 전역(全域)에 특구 광풍이 불고 있다. 지방급 개발구에는 1억∼2억 달러의 투자 금액까지 상세하게 제시했다.
북한은 1991년 중국을 모방해 최초로 나진·선봉지구를 경제특구(特區)로 지정했다. 1998년까지 중국·홍콩·일본 등으로부터 8억 달러의 투자 계약이 이뤄졌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실제 투자액은 4%에 불과했다. 평양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모기장식 개방’을 했다. 무늬만 특구였다. 특구를 기업이 자유로운 특별지역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중국의 경제특구와 법적으로 유사한 나선특구가 실패한 이유는 최고지도자의 비전 차이 때문이다.
중국은 1979년 선전(深)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상하이 푸둥(浦東) 등 14개 지역을 경제특구로 확대했다. 점을 선으로 만들고 선을 내륙으로 확대하는 점(點)-선(線)-면(面) 개방정책이었다. 최고지도자가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하향식으로 추진했다. 보수파의 반발이 거셌지만 치밀한 계획과 인민의 마음을 얻는 지도력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는 1983년 선전을 시찰하면서 “경제특구는 새로운 것을 새롭게 하고, 특별한 것을 특별히 할 필요가 있다”고 격려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특구는 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풀어놓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1984년 중앙지도자들과의 회의에서 특구는 ‘기술의 창구, 관리의 창구, 지식의 창구 및 대외정책의 창구’라고 규정했다. 결론적으로 특구는 개혁·개방의 전초기지였다.
북한은 영도자의 비전 결여로 실무자들의 상향식 추진이 불가능하다. 과거 김정일은 사망할 때까지 모두 9차례 중국을 방문해 상하이(上海) 등 특구 현장을 둘러봤다. 그러나 평양으로 귀환한 후 진정한 특구는 없었다. 그가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개방에 대한 다양한 기대가 나왔지만, 평양에서 실행되지 않은 이유는 정치적 변수다. 이는 수령체제의 유지와 직결돼 있다. 필자는 과거 평양 방문 시 북측 안내 참사에게 경제를 회복시킬 대안이 있는지 질문했다. “장군님이 다 알아서 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치적 답변이 돌아왔다.
중국은 지도자가 교체되면서 단계적 시장경제 도입을 통한 경제발전 의지를 계속해서 추진했다. 1987년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을 거쳐 1992년에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을 발표했다. 반면 북한은 완전한 사회주의의 달성을 지향했다. 지도자의 특구 비전이 확고하지 않다면 개발 청사진은 관료들의 단순 도상연습에 불과하다. 김정은 브랜드인 특구 광풍의 성공 해법은 간단하다. 중국 특구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중국이 부담스럽다면 최근 부상하는 미얀마, 쿠바 모델이라도 모방해야 한다.
특구 정책은 북한 경제가 지향해야 할 종착역이다. 집권 4년 차에 마이웨이식 통치는 선대와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확실한 비전으로 한 곳의 특구라도 성공시킨다면 희망이 있다. 미사일과 특구는 양립할 수 없다. 핵(核)과 경제의 병진정책도 어불성설이다. 연초부터 무리한 혹한기 군사훈련보다는 특구를 성공시킬 묘책을 구상하는 것이 체제 존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