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계층 脫北과 대북 제재 효과
[오피니언]포럼 게재 일자 : 2016년 04월 14일(木)

남성욱 /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前 민주평통 사무처장
최근 일련의 북한 엘리트계층의 탈북은 북한판 엑소더스의 시작인가? 과거와 다른 특징이 있다. 우선, 정찰총국 대좌의 탈북이다. 탈북자의 소속기관과 계급이 눈여겨 볼 부분이다.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군 출신 중 최고위직이다. 정찰총국은 북한 인민군의 핵심 조직으로, 각종 대남 공작업무를 총괄한다. 2010년 3월의 천안함 폭침 등 각종 무력 도발을 주도해왔다. 북한 권력의 핵심으로 김정은 체제를 지탱하는 이 기관에서 탈북자가 나온 것이다. 편제상으론 북한군 총참모부 산하지만,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 속칭 ‘파워 그룹’이다.
한편, 국제사회의 대북(對北) 제재 이후 첫 집단 탈북도 이뤄졌다.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의 북한 식당 지배인을 포함한 종업원 13명이 탈출했다.북한 해외 종업원들은 철저한 신분 검증 절차를 거친다. 당·정·군 간부 자녀와 친인척 가운데 노래나 춤 실력이 출중한 20대 여성이나 예술학교 출신을 선발한다. 이들은 엄격한 감시와 통제 속에 하루 12시간 이상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충성자금’ 명목으로 상납하는 돈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해외로 나오려는 여성은 줄을 섰는데, 집단 탈북이 발생한 것이다. 안보리 제재 제2270호가 발효되고 한국인들의 북한 식당 이용 자제 조치는 영업 중단으로 이어졌다. 최근 탈북 사태는 두 측면에서 미래를 예견하는 단초를 제시한다.
먼저, 김정은 체제의 탈북은 선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김정일 시대의 탈북은 주로 생계형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엄동설한에 두만강·압록강을 건넜다. 주로 국경지대에 사는 ‘기본계층’이 다수였다. 반면, 김정은 시대의 탈북은 숙청과 공포형이다. 2013년 장성택의 처형 이후 평양 ‘핵심계층’에는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불안심리가 확산됐다. 3대 세습의 통치 기강을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인민무력부장부터 빨치산 후손인 최룡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가시방석이다. 권력의 금수저들도 속으론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양봉음위(陽奉陰違)의 조사가 시작되면 숙청에서 예외가 없다. 젊은 지도자 김정은의 광기는 평양 사회를 좌불안석으로 몰아가고 있다.
다음은, 중국의 미묘한 입장 변화다. 중국 외교부는 집단 탈북에 대해 국제법에 따라 처리했다고 밝혔다. 여권을 가진 북한 인사의 합법적인 출국은 제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과거에는 여권 소지에 상관없이 북한 인사의 한국행에는 소극적이었다. 북·중 관계의 마찰을 우려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탈북자 처리 방침이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결국,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북한 인사의 중국 내 출국을 성공시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성분이 좋고 여권을 발급받은 핵심계층과 바닥 계층의 탈북이 동시다발로 이뤄진다면 북한 정권의 균열은 심해질 것이다.
일련의 탈북·망명 사태가 곧바로 김정은 체제의 직접적 붕괴를 초래하지는 않겠지만, 유사 사례가 늘어난다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향후 북한 당국의 강경 조치는 역설적으로 엘리트 계층의 탈북을 가속화할 수 있다. 이제 안보리의 본격적인 제재가 시행된 지 40일이 지나고 있다. 일차 외화벌이 일꾼 중심으로 동요가 커지고 있고, 물가상승 등 경제 상황 악화로 북한 주민들도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평양 당국은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예고하고 있다. 향후 1년 정도 지나면 제재 효과가 가시화할 것이다. 본격적인 엑소더스를 가속화하고 대비하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