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의제 모호한 군사회담의 위험성
게재 일자 : 2017년 07월 18일(火)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남조선 집권자가 한·미 양국이 북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했다는 등 가소롭게 놀아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7·6 베를린 선언 9일 만이던 지난 주말, 북한은 남측을 비판하면서도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존중·이행을 다짐하는 등 선임자들과는 다른 입장들이 담겨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이례적인 반응도 보였다.
정부는 8600여 자에 이르는 북한의 장광설(長廣舌) 논평이 남측과의 회담에 관심을 보인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문 정부는 남북관계의 운전석에 앉자마자 급발진(急發進) 수준의 운행을 시작했다. 북한의 반응이 나오기 무섭게 정부는 북한에 군사·적십자 쌍회담을 제안했다. “남북이 군사분계선에서 일체의 적대행위 중단과 이산가족 상봉 제안”이라는 베를린 구상의 후속 회담은 정부의 예정된 수순이다. 정부 출범 이후 석 달도 안 돼 남북 당국 간 회담이 제안됐다. 역대 정부와 비교해 볼 때 초단기 신기록 수준이다. 33개월 만에 재개될 가능성이 큰 남북 군사회담의 대차대조표를 진단해 보자.
북한의 요구사항은 분명하다. 우선, 고출력으로 비무장지대(DMZ) 근무 북한 병사들을 밤마다 흔들어 놓는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이다.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자 김정은은 5월 제7차 당대회 결정서에서 “심리전 방송과 삐라 살포를 비롯해 상대방을 자극하고 비방 중상하는 일체 적대행위들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군사회담을 제안했다. 핵무기보다 무서운 대북 심리전은 김정은이 직접 나서 중단을 요구한 사안이다. 김정은을 비판하는 대북 전단 살포도 중지다. 8월 한·미 연합훈련의 축소도 단골 메뉴다. 북측은 남측 대표 면전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를 강조할 것이다. 특히, 핵무기와 ICBM으로 무장한 북한군 수뇌부의 군사적 겁박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북한은 대남 군사 압박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큰 회담을 수용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무인기 대남 침투 중지, DNZ 내 목함지뢰 매설과 화기 반입 중단을 거론할 것이나, 목소리는 로 키(low key)일 것이다. 대화를 제안한 마당에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는 요구는 형식적일 가능성이 크다. 남북 군 통신선의 복원 정도가 성과가 될 것이다. 역으로 북한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도 미흡하다. 향후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하는 입장에서 상대의 요구 사항 수용은 불가피하다. 비무장지대 내 적대행위 중단에 대한 남북 간 인식 차이가 작지 않은 상태에서 북측의 무리한 요구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군사회담에서 북한은 갑이고 우리는 을의 위치에 서는 것은 안보나 남북관계 발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난 2000년 이후 49차례의 남북 군사회담이 개최됐지만, 한반도 긴장 상황은 해소되지 않았다. 회담만이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이 냉엄한 역사적 교훈이다.
특히, 군사회담은 시기적으로 이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빛의 속도’로 진행 중이다. 세컨더리 보이콧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는 이 시점에 의제가 모호한 군사회담은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 핵무기로 무장한 김정은의 북한은 선대 김정일의 북한과는 다를 것이다. 회담의 형식, 내용 및 주고받기 틀도 과거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것은 대등한 회담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현실을 의미한다. 군사회담은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