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 2부⑮]남성욱 "이런 식으로 경제 운용하면 대북 정책 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 입력: 2018.08.27 21:00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25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방북을 취소한 것에 대해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 교수는 이날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교우회관에서 가진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데 방북 후 또 빈손으로 오면 6·12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은 완전히 휴짓조각이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남 교수는 "미국의 착각 중 하나는 북한의 입장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며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협상이 벽에 부딪히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점점 북한의 실체를 깨닫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새로 수립하겠다’는 6·12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 첫 번째 항목에서부터 미국은 북한의 협상 전략에 말려들었다"며 "미국은 이 조항을 상징적 문장으로 생각했지만, 북한은 종전 선언의 빌미로 삼고 있다"고 했다. 남 교수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이면 합의로) 민간인 방북을 많이 허용하겠다고 했을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개성 연락사무소 설치에 대한 미국의 반대는 100m 달리기를 하기 전에 선을 넘지 말라는 심판의 경고 메시지이며 ‘사전 경고’"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는 9월 중으로 예정된 3차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사진 찍는 것 이상의 무슨 큰 얘기가 오가겠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며 "정상회담을 한다고 도깨비 방망이처럼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전임 대통령 시절에 이미 다 알았다"고 했다. 남 교수는 "퍼포먼스가 대통령 지지율을 끌고 가는 측면이 있는데 청와대도 이를 즐기는 것 같다"며 "경제가 활력을 되찾아주면 국민들이 그것을 평화비용으로 생각하고 정상회담도 좋다고 마음에 여유를 갖게 될 것이지만, 이런 식의 경제 운용 기조라면 2020년 총선 이후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 다음은 남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남성욱 고려대학교 교수가 지난 25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교우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변지희 기자
-8월말 4차 방북을 예고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갑자기 방북을 취소했다. "여전히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비핵화 협상과 관련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데 방북 후 또 빈손으로 오면 6·12 미북정상회담이 완전히 휴짓조각이 된다. 6·12 정상회담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 경고 서한을 보냈듯 이번에도 일종의 주의를 줘 보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착각 중 하나가 북한 입장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3월부터 주장했다. 이런 입장이 변하지 않아 협상이 벽에 부딪힌 것이다. 6·12 정상회담 전에 판을 흔들었듯이 판을 깨지는 않으면서 다시 주도권을 잡으려는데 쉽지 않다. 지난번에는 정상회담 하지 않겠다고 해서 북한이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상회담이 걸린 것도 아닌데 북한이 쉽게 꼬리를 내리겠나. 트럼프 대통령이 점점 북한 실체를 깨닫는 과정을 겪고 있다." -6월 12일 미북 정상회담이라는 큰 이벤트 이후에도 비핵화 협상은 계속 교착상태인 것 같다. "6·12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 첫 번째 항목부터 북한의 협상 전략에 말려드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새롭게 수립하겠다’는 내용인데, 미국은 이를 하나의 상징적인 문장으로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이 문장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하자고 해놓고 왜 종전 선언을 안 해주냐고 주장할 수 있다. 합의문에 따라 북한 입장에서는 새로운 관계를 수립한 후에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북한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 합의문 첫 번째 항목을 두고 미국에서는 ‘앞으로 핵을 없애자’는 수준의 미래지향적인 문구라고 생각한 것 같다. 서로 다른 벽을 보고 얘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이 생각보다 북한을 잘 모르고 협상에 뛰어 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크리스토퍼 힐은 뛰어난 협상가였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당시 북핵 문제 협상 과정에서 힐을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힐은 자서전에서,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다른 국가와의 외교처럼 ‘기브 앤 테이크’를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도 그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같다. 왜 협상 전에는 모르고 부딪히고 나서야 깨닫는지 모르겠다. 존 볼턴 보좌관은 북한의 이런 성향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이 강경하니 폼페이오 장관을 앞에 내세우고 본인은 뒷짐 지고 있다. 그는 지금 상황이 오래 못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교착 국면을 두고 미국이 성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일부 주장이 있다. 미국 탓이란 얘기다. "북한 논리와 똑같다. 그들은 ‘미국이 한 게 뭐가 있느냐’ ‘돈 드는 연합훈련만 축소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기본 정서에는 자주, 반미가 깔려있다. 평양에서 하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 정부 기조를 밖에서 지지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런 맥을 갖고 있다.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으면 한반도가 통일됐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남북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반미 정서를 야기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미국이 대북 제재 위반을 이유로 한국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해주면 반미 정서가 촉진돼 오히려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미국도 장갑차에 여중생이 치여 숨진 ‘효순·미선 사망 사건’을 겪은 후로 한국을 다루는 노하우가 생겼다. 절대 거칠게 대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세컨더리 보이콧 등을 부추기는 기류가 한국에 있음을 미국도 알고 있겠지만, 한국을 내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되면 민족 공조 분위기가 강조되고, 남북미를 엮어보려 했던 미국 구상이 허물어진다. 그래서 한국을 대놓고 불편하게 하지 않을 것 같다. 아마 미국과 국제 사회는 한국이 완전히 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사건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이번 북한산 석탄 사건의 경우 러시아와 중국도 얽힌 복잡한 사건인데다 한국 검찰이 기소도 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를 압박한다고 크게 얻을 건 없다. 한국이 우회적으로 북한에 현금을 준다거나 하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개보수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7월 2일 우리측 인력이 내장재 실측 작업을 하고 있다./통일부 제공
-현 정부는 제재를 넘나드는 조치를 계속 하려 한다. 개성 연락사무소 설치도 미국에선 제재 위반 얘기가 나온다. "개성 사무소와 관련해 지금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외교관 협약’을 적용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 문제는 아직 딱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한국의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어느 게 옳은지 유권해석을 하긴 어려운데, 현재 미국의 반대 목소리는 ‘사전 경고’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가만두면 한국이 앞으로 더 나아갈 테니, 100m 달리기를 하기 전에 선을 넘지 말라고 심판이 경고 메시지를 주는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한국이 옳다, 미국이 옳다 하기는 아직 이르다. 또 미국이 나서기에는 아직 경미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명분을 놓고 봤을 때 미국이 장관급 레벨에서 말하기에도 크지 않은 사건이다. 만약 현금을 주는 문제가 생기면 미국이 나설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 4차 방북이 연기됐으니 개성 연락사무소 개소 역시 미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늦어진다면 조절을 해야 한다. 북한에도 비핵화 협상을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이런 식이면 3차 남북 정상회담에 가서도 우리가 줄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한국은 ‘마이웨이’를 한다는 식이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북한에도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것이고 미국과도 사이가 나빠진다. 한국이 얻는 실익이 없다. 결국 관건은 폼페이오 장관 방북이다. 11월 미국 중간 선거와 그 직전으로 예상되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은 핵무기·핵시설 신고 목록을 받아와야 한다." -북한이 순순히 핵시설을 신고할지 의문이다. "북한으로부터 핵시설 목록을 받으면 미국 정부가 자신들이 가진 목록과 대조해 보는 절차를 거친다. 지난 2003년에도 그랬다. 당시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목록을 받았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던 목록과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두 목록이 딱 맞으면 현장 접근이 빨리 끝날 텐데, 맞지 않으면 사찰에 들어가야 한다. 북한으로서는 목록을 빠짐없이 내놓는 게 쉽지 않다. 또 그들 입장에서는 미군 유해도 주고, 풍계리 핵실험장도 없앴는데 미국이 한 게 뭐 있냐고 주장하면서 신고를 거부할 수 있다. 신고 없이는 비핵화로 갈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현재 국내에서 특검으로부터 고발당한 악재 때문에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어떤 식으로든 하고싶어 한다. 알맹이 없는 선언이 나올지라도 미북 정상회담을 하면 2~3주간 언론을 장악할 수 있다." -2차 미북정상회담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보나. "그동안은 우리가 중매자 역할을 맡아서 미북 정상회담이 이뤄지도록 했다. 볼턴 보좌관의 인터뷰로 추정컨대,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1년 안에 비핵화를 하겠다고 했다’고 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번에도 미국 측에 이런 식의 입장을 전달했는데 북한 비핵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위험할 수 있다. 11월 중간선거가 지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열의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3차 남북 정상회담도 잘 치러야 한다. 그때 나온 이야기를 그대로가 아닌, 변형 해서 미국 측에 전달하면 상황이 악화됐을 때 모든 책임을 한국이 뒤집어쓴다. 정확하게 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답보인 상태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새롭게 할 얘기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사진 찍는 것 이상의 무슨 큰 얘기가 오가겠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2002년, 2007년에도 남북 정상회담을 했었는데 정상회담을 한다고 도깨비 방망이처럼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전임 대통령 시절에 이미 다 깨달았다. 이산가족 상시상봉 같은 게 나온다면 국민들이 지지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마나 한 얘기를 담은 합의문이 나오고, 사진만 찍고 온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한국 역사상 첫 정상회담 격이었던 1948년 4월 김구 선생의 방북 때도 지금과 똑같은 얘기가 나왔다. 김구 선생이 평양에 갔을 때 김일성이 ‘민족이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 풀지 못할 이야기가 어딨겠느냐’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지금까지 똑같이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결된 게 뭐가 있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지물이 있는‘도보다리’에서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이번 3차 남북 정상회담은 날짜를 잡는 데도 우여곡절이 있다. "이번 정상회담 주도권은 북한에 있다. 우리는 북한에 빨리 만나면 좋겠다면서 워싱턴도 설득하겠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혹할 수밖에 없다. 제재 완화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다. 반면 미국에는 ‘미북 정상회담을 하면 북한이 비핵화하겠다고 했다’고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지금 양쪽이 듣기 좋은 얘기만 전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미북이 정작 만나면 다른 벽을 보게된다. 실무회담에서도 합의가 안 되면 정상회담에서도 안 되고, 정상회담에서 안 되면 실무회담에서도 안 된다는 북한의 원칙이 있다. 성김 대사와 최선희가 수차례 만났지만, 싱가포르 회담에서 결국 합의를 제대로 못 했다. 아마 북한은 한국에 ‘당신들이라도 무언가 가시적인 조치를 해봐라’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막상 해줄 만한 조치는 없으니, 리선권 같은 사람들이 기자들 앞에서 퉁명스럽게 반응한다." -북한에 하는 말과 미국에 하는 말이 다르다는 뜻인데, 이로 인해 우리 정부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뭐가 있겠나. "퍼포먼스가 대통령 지지율을 끌고 가는 측면이 있는데 청와대도 이를 즐기는 것 같다. 계속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꾸 만나자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만나면 무엇이든 성과가 나와야 하는데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북한도 퉁명스러워진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 북한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가 돼야 한다. 제재 완화,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원하는데 우리 정부는 국제 제재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북측은 정상회담 날짜를 우리 정부가 원하는 대로 주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이면합의 과정에 무언가 보상책을 얘기했으니 북한이 협상장에 나온 건 아닐까. "두루뭉술하게 했을 것 같다. 개성이나 금강산을 터준다는 시그널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민간인 방북을 많이 허용하겠다고 했을 수 있다. 벌써 갔다 온 사람도 꽤 있고, 곧 갈 사람도 있다. 어제는 태권도 후원 자격으로 9월에 방북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3박 4일 가는 동안 1인당 500만원을 낸다고 한다. 내가 2005년 방북했을 때는 3박 4일이면 150만원 정도 들었다. 교류가 10년 동안 막혀 있다가 풀리니까 오른 것 같다." -그런 우회적 관광도 제재위반 아닌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도 관광을 못하게 한다는 조항은 없고 애매하게 돼 있다. 북한에 가면 현금을 쓸 수밖에 없다. 대신 포장을 한다. ‘관광’이라는 말은 절대 안 쓰고 현지답사, 환경생태조사 이런 말을 쓴다. 방북 규모에 한계가 있지만 이런 식으로 북한 숨통을 터준다. 한국도 방북 규모가 점점 커질 거라고 북한을 설득할 것이다. 북한은 관광 재개 등을 통해 한미 간을 이간시키려는 목적이 있다." -우리 정부는 알아서 북한에 저자세로 나가는 것 같다. 이번엔 국방백서에서 주적 개념도 빠진다는 얘기가 있다. "안보에 대한 태도를 섣불리 바꾸는 건 걱정스러운 측면이 많다. 교류협력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현재 외교·안보 4개 부처가 한 방향으로만 일사불란하게 가고 있는데, 각 부처의 존재 의의를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재를 완화해야 김정은이 비핵화와 관련해 군부를 설득할 명분이 있다’고 하는데 김정은이 군부고 군부가 김정은이다. 교묘하게 김정은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이해하려는 논리다. 전투라는 게 병력이 많고 무기가 우세하다고 꼭 이기는 게 아니다. 북한 군인들은 1차 남북정상회담때 정복을 입고 판문점에 왔다가 술 한잔 안 하고 바로 가지 않았나." -북한이 베트남 모델을 따라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는데. "북한은 절대 베트남 모델을 따라갈 수 없다. 베트남에는 핵문제가 없었고, 지도부도 4번이나 바뀌었다. 또 철저하게 친미반중(親美反中)이다. 내가 예전에 평양에 갔을 때 궤도 전차를 탔다. 타고 가다가 전기가 끊어져 사거리에 섰는데 내가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 좀 찍어야겠다고 하니 안내원이 그걸 꼭 찍어야 하느냐고 했다. 좋은 게 많으니 좋은 것만 찍으라고 한 것이다. 지금도 북한은 이렇게 자기들 방식대로 가겠다고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영상을 보여주며 개혁개방을 촉구했다는데 그 자체가 북한 공부를 얼마나 안 했으면 그랬나 싶다." -김정은은 그래도 자신의 소유인 북한을 개발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보이지 않나. "젊은 사람이니까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다. 김정일은 건강이 안 좋아서 마지막 5년 정도는 현지 지도도 다니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경제라는 것은 자본과 노동, 기술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도 예외는 없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마중물, 시드머니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은 어떠한 시드머니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그게 독이 든 사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양에 건물이 올라가고 전기가 밝혀진다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이런 사업은 큰돈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건물 짓는 것도 유심히 봐야 한다. 40층, 50층 건물을 올리면서 사람이 일일이 시멘트를 쏟아붓는다. 한국은행의 통계를 보면 북한은 GDP가 올라가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 1인당 소득이 600달러 올라가는 데 14년이 걸렸다. 변화가 없다는 뜻이다. 인민들의 소비생활을 눌러놓은 상태기 때문에 서방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 발전은 있을 수가 없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계속되는 현지 지도로 북한의 경제발전을 채찍질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이 의욕은 있다 해도 선대랑 달라진 게 뭐가 있나. 현지 지도를 다니고 있는데 그때 나타나는 효과는 풍선 효과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김정은은 최근 함북 발전소 건설 현장에 가서 내년까지 작업을 완료하라고 발전소 사람들을 질타했다. 다음해까지 발전소를 완성하려면 시멘트며 철근,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이 외부로부터 자본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니 결국 북한 내 다른 지역의 자본을 전용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자기 금고에서라도 돈을 주면 생산증가 효과가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지 않나. 자력갱생 하자, 스스로 해결하자는 이른바 ‘로빈슨 크루소’식 경제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앞서 말했듯 이렇게 해서는 베트남 모델을 따라갈 수 없다. 경제특구도 지정해놨지만, 돈을 어떻게 벌어가는지에 대한 비전이 없다. 이렇게 해서 외국 자본이 투자하겠나. 아직도 자본주의의 냉정함을 모르는 것 같다." -김정은은 지난 6·12 미북 정상회담 당시 싱가포르의 야경도 구경하며 마치 경제 개방을 생각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유학 생활을 해봤기에 해외 다니는 것에 거부감은 없는 것 같다. 다만 김정은은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자기 컨트롤하에 외국인 투자 유치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베트남이 1996년에 미국과 수교를 했는데도 IMF에서 돈이 들어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자본의 투입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설령 미북 수교가 된다 하더라도 내일모레 바로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금융은 정치보다 더 보수적이다. 만에 하나 잘못됐을 때 국가가 아니라 투자를 결정한 개인들이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수교를 하면 금세 북한에 돈이 들어올 것 같지만, 사실은 간단치 않은 문제다." -일본과 수교를 하고 거기서 받는 돈이 마중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1991년도에 일본에서 수교의 조건으로 60억 달러를 주겠다고 얘기하자 김일성이 90억 달러를 달라고 했다. 지금 환율로 따지면 200억 달러 정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핵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절대 현금으로 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현물로 주거나 토건을 해주는 방식이 될 같다. 한·일 수교 때는 반대였다. 당시 한국은 자꾸 기술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일본은 돈만 주고 기술은 안 주고 싶었다. 반면 북한 경우는 SOC를 개발해 주는 형식으로 발을 걸쳐놔야 영향력을 유지한다고 일본이 생각하는 것 같다."

남성욱 고려대학교 교수가 지난 25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교우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변지희 기자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북한의 핵을 인정하고 개혁·개방을 유도해야 할까. "북한 문제를 해결책 위주로 생각해선 안된다. 그동안 답이 있으면 한국이 왜 그 길을 못 찾았겠나. 북한 문제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서두르면 장고 끝에 악수만 둔다. 관리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다만 안보를 튼튼히 하고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소득이 4만5000달러 정도 되면 북한에 대해 압도적 우위에 서기 때문에 중국이 대만에 하던 방식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 그 정도 차이면 비자를 받고 평양에 가도 정체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단계가 된다. 그 단계를 거치고 나면 동북아 국제정치에 결정적인 변화의 순간이 올 거다. 시진핑 주석의 독재가 약화했을 때 남북이 유엔에 한 나라로 가면 제도적인 통일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전에는 국력을 키워야 한다. 나는 남북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정상회담을 해서 김정은에게 정확한 실상을 전해줘야 한다.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지나고, 미국이 북한을 쳐다보지도 않으면 어떡할 거냐고 얘기해야 한다. 비핵화를 위해 핵시설, 핵무기 신고를 하는 게 네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정확하게 얘기를 전달해야 한다." -현 정부의 남북관계 기조는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을까. "대통령 지지율이 더이상 올라가긴 힘들 것 같다. 2020년 총선까지 우리 경제가 받쳐준다면 여야가 균형을 맞추는 선에서 선거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이 상태로 내리막길이면 정부 여당이 상당히 어려워진다. 남북관계와 대북정책도 추동력을 잃게 된다. 즉 남북관계는 경제에 달렸다는 뜻이다. 경제가 활력을 되찾아주면 국민들이 그것을 평화비용으로 생각하고 정상회담도 좋다고 마음에 여유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경제 운용 기조라면 내년 정도 됐을 때 성과 지표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내년에도 경제 논쟁이 심해지면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우리 정부가 북한 비핵화보다도 종전선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비판도 있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제재가 없을 때는 종전선언의 의미가 크지 않았다.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전쟁이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압박하거나 공격하거나 경제적인 제재를 하는 것에 대한 명분이 많이 사라진다. 유엔 제재는 지키지 않더라도 회원국들을 징계할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이 없다. 하지만 이번 대북 제재는 미국의 국내 행정 조치에 근거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강력한 압박이 된다. 미국은 1950년 이후 재무부법, 상무부법, 국방부법 등에 각종 제재의 근거를 마련해왔다. 문제는 종전선언을 하면 그런 법 적용에 한계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러면 결국 유엔 제재도 유명무실해진다. 제재가 무력화된다는 뜻이다. 또 종전선언이 되면 한미동맹도 문제가 된다. 우리는 한미 동맹이 방어적 성격이고 북한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얘기하지만, 종전선언을 했는데 주한 미군은 누구를 위해 주둔하느냐고 반박할 수 있다. 결국 연합훈련 명분도 없어진다. 궁극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나오게 된다. 노동신문을 보면 ‘선언적이고 정치적인 종전선언조차 해주지 못하면서’라는 표현이 나오는 데 위장 발언이다. 북한은 이런 복잡한 사정을 모두 알고 있다. 짧지만 현혹적인 문장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 : 고려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개발경제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미국 미주리주립대에서 응용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정원 연구위원 출신으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과 고려대 북한학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2012년~2013년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로 재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