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口頭친서 전달
"北·中 전통 우호관계를 강화…"
리수용이 메모 읽으며 전하자 시진핑 "兩黨 소통 전통 확인"
- 核·경제 병진 우회적 반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일관되고 명확한 입장…"
시진핑, 원론적인 표현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리수용 북한 노동당 정무국 부위원장을 만나 밝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일관되고 명확한 입장"이란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란 중국의 대북 3원칙을 의미한다. 이날 시 주석은 비핵화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에 대한 반대 의사를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3년 전 최룡해 당시 북한 총정치국장을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북한 비핵화에 대한 시 주석의 목소리가 다소 낮아진 느낌이다. 당시 시 주석은 "정세가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관련 국가들은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굳건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했었다. 최룡해 앞에서 북한 비핵화를 직접 경고한 것이었다.
리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31일(현지 시각) 중국 베이징에서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회담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리수용 부위원장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항구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뜻을 중국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노동신문
이날 시 주석은 북한 대표단이 노동당 7차 대회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방중한 것에 대해 "양당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전략적으로 소통하는 전통을 확인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양당, 양국 관계를 중시하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인민이 경제 발전, 민생 개선, 사회주의 사업 건설에 더 큰 성취를 이룩하기를 축원한다"고 말했다.
리수용은 시 주석에게 김정은의 구두 친서를 전달했다. 그는 직접 메모해온 서류를 들여다보며 "북한은 북·중 간 전통 우호 관계를 강화·발전시키고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의 평화·안정을 수호하는 데 중국과 공동으로 노력하기를 희망한다"는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신화통신은 리수용이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 관한 시 주석의 발언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혔는지는 보도하지 않았다. 리수용이 핵 문제와 관련, 중국이 기대하는 수준의 진전된 태도를 보였을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는 이날 저녁 메인 뉴스에서 시 주석과 리수용 간의 면담을 첫 뉴스로 보도했다. 북한 대표단은 10여명쯤 배석했고, 중국 측에선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등 7~8명이 등장했다. 3년 전 최룡해 면담 당시 시 주석은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날은 웃는 얼굴로 리수용과 악수하는 등 비교적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중국은 다음 주 베이징에서 열리는 미·중 전략 대화를 앞두고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상황 관리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며 "미국이 베트남과 일본 방문을 통해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중국은 북한을 불러들여 자신의 카드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 주석이 리수용을 환하게 웃으면서 만난 이면에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고 이는 중국 국익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유예하겠다는 뜻을 중국 측에 전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되면 김정은 방중도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시진핑 미소에서 최고위층 간의 교류까지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북·중은 핵 문제에 대해 아직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김정은 방중 등을 깊이 있게 거론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이 당 대 당 교류를 회복하기 위해 모처럼 마련된 기회에 비핵화를 거론할 경우, 양국 관계가 다시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해 시 주석이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고 그간의 상처를 봉합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 같다"고 말했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의 뤼차오 교수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내놓기 전에 김정은 방중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북한을 (외교적으로) 활용하려다 국제사회에서 더욱 곤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리수용 일행은 2일 고려항공 편으로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다.
안용현 기자
베이징=이길성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