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강도 사고와 北 변화
북한 양강도 김형직군의 대규모 폭발 사고에 관한 진상 규명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사고는 13일 오전 현재까지도 ‘폭발사고’라고 단정할 근거가 명확치 않은 것 같다. 용천과 달리 김형직군은 외부에 쉽게 노출되지 않은 첩첩산중 산간 오지에 위치해 있어 북한 당국이 진실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인공위성 사진이나 지진탐사 등 첨단기술에 의존한 간접 확인 방법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 지역은 주민 거주지가 아니라 목격자도 많지 않을 것이고, 있다 하더라도 북한 당국의 철저한 통제가 이뤄짐에 따라 진상 파악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일정 기간 핵실험설, 단순안전사고설, 무력과시용설 등 각종 설이 난무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각종 추측의 근거는 나름대로 논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을 분석하는 전문가적 입장에서 어느 하나 소홀히 취급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번 사건같이 현장이 베일에 싸이고 많은 의문점이 있는 경우에는 사고 내용의 미시적 파악보다는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는 거시적 분석이 사태 진전 추이를 예측하는 데 효과적이다. 가장 중요한 거시적인 관전 포인트는 시기와 국제환경 변수다. 시기와 국제변수 분석은 사고든 모종의 위장 폭발이든 간에 모든 설과 연계하여 이뤄질 수 있다. 시기와 관련, 우선 고려할 사항은, 2004년 북한 체제의 공고성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용천사고 이전에도 북한에는 각종 대형 안전사고가 있었다. 다만, 강력한 통제 장치의 작동으로 즉시 공개되지 않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탈북자 등을 통해 외부로 유출됐다. 그러나 용천사고부터는 휴대전화를 비롯, 북·중간 인적·물적 교류의 증가 등으로 사고가 비밀로 유지되기 어렵다. 특히, 주변국 첨단 전자장비의 감시 체계 가동으로 보안 유지가 곤란하다. 이에 따라 백두산 자락 산골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사고 자체까지 감추기는 어렵게 됐다. 다음은 올해 들어 10년간 지속된 북한의 경제난으로 통치체제의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경제난에 따른 국가 물자의 공급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함에 따라 사회주의 체제의 일사불란함이 무너지고 있어 단순 사고도 대형 사고로 비화하곤 한다. 사회간접자본은 물론이고 미사일 무기 등 위험한 군수 장비를 다루는 현장에서도 느슨하고 허술한 관리 체계로 대형 사고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북핵 위기가 질적·양적 빅뱅을 야기할 수 있는 불안한 환경을 맞고 있다. 3차에 걸친 북핵 다자회담이 개최됐지만 북·미 간에 제대로 된 대화와 회담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회담 개최 횟수와는 상관없이 북핵 위기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미 양측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목소리를 조절하고 있지만 양측 모두 행동(Action)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북한은 9월 말로 예정된, 성과는 없고 목소리만 요란한 6자회담보다는 11월 미국 대선전에 조커카드를 빼들어 흔드는 것이 미국을 움직이는 데 더효과적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시기 및 국제 환경과 관련된 어느 분석이든 문제는 북한의 행동이 예측 가능한 오차범위를 이탈하는 징후가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징후가 개혁과 개방이라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사회 전체를 흔드는 사건·사고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는 측면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9월 9일 공화국 창건일에 즈음하여 일어난 대형 사건은 북한 당국의 의도가 반영돼 있을 가능성이 큰 만큼 북한의 미래 행로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한국의 핵 연구 논란과 워싱턴의 대북 반응이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서 평양의 행보를 예측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으나 이번 가을에 한반도를 감도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남성욱 / 고려대 북한학 교수